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몽골 제국 (문단 편집) === 정복활동의 의의 === 칭기즈 칸은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뒤부터 대외원정을 시작했지만 그는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칭기즈 칸 시대 몽골군은 1214년 대금과 화친을 맺은 뒤 바로 철군하였고 1225년 호라즘 원정이 끝난 뒤에도 즉각 초원으로 귀환하였다. 그는 '''군사적 위협을 통해 상대로부터 안정적으로 약탈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 것'''으로 그의 전략은 흉놀 이래 유목국가의 군주들이 흔히들 사용한 전략이었다. 그럼에도 칭기즈 칸이 중국 일부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과정에서 그 지역에 제국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정치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금의 경우에는 황실이 수도를 개봉으로 천도하면서 河 북부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었고 호라즘은 왕의 도주와 피사롤 나라가 망했다. 반면에 칭기즈 칸 사후 후손들이 추진한 대외원정은 정치적 응징이나 군사적 위협이 아닌 '''상대국가의 영토에 대한 영구적 내지는 정치적 복속을 목적으로 하는 쪽으로 방향이 크게 변하였다'''. 칭기즈 칸의 3남 오고타이가 카간의 칭호를 받은 1231년 무렵 고려로 보낸 국서에 이런 방침변화가 드러난다. 몽골 제국이 “‘영원한 하늘의 가호’를 받아 정복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에 이에 저항하는 사람이나 국가는 모두 멸망할 것”이라는 언사와 함께 고려국왕이 직접 자신에게 찾아와 항복하라는 의사를 표시하라는 요구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후일 카간으로 즉위한 귀위크 칸이나 몽케 칸이 교황과 프랑스 국왕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완전히 똑같은 요구가 확인된다. 칭기즈 칸 사후의 몽골 제국은 문자 그대로 세계정복을 목적으로 한 전쟁을 벌인 것이다. 그리하여 몽골 제국의 소위 ‘[[세계정복]]’ 전쟁은 '''2대 오고타이 칸이 즉위한 1229년부터 5대 쿠빌라이 칸이 남송을 멸망시킨 1279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특이한 점은 여러 세력 및 지역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공략을 감행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오고타이 칸은 금과 전쟁하면서도 주치의 아들 바투와 자신의 아들 귀위크 칸이 지휘하는 원정군을 서방으로 보내 불가리아 칸 국(러시아 타타르족의 전신)과 킵차크를 복속시키고 러시아와 동유럽을 공격하였다. 그는 동시에 서남아시아와 고려에도 전쟁을 하였다. 희대의 명장 수부타이가 이끄는 러시아 동유럽 공격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나, 군대 특징의 상성 상 그리 수월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귀위크 칸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즉위하였고 유럽원정을 완수하고자 하였으나 도중에 병사하였다. 이에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 툴루이의 장남 몽케 칸이 바투의 지원을 받아 몽골 제국의 4대 칸이 되었는데 그는 서남아시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와 아사신(암살자)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아파 세력을 제거하고자 동생 훌라구로 하여금 정복전쟁을 수행하게 하였고, 쿠빌라이에게는 회수 이남에서 몽골과 맞서던 남송 정복을 하게 하였다. 훌라구는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면서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지만 1260년 맘루크에게 패퇴하여 지중해 진출은 막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